작성일 : 18-03-13 17:02
[사목단상] 본당 사도직을 마치고... (제2편)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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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동본당에서 봉성체 대상자들을 시작으로 전신마비로 누워 있는 33살의 엘리사벳 자매와 과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사는 장애인 로사 자매, 성당 맨 앞자리 내 옆에 않았던 뇌성마비 안나 자매, 하반신 마비인 본당 카페지기 요세피나 자매 등을 자주 방문하면서 본당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참으로 기뻤고 보람도 컸다. 그래서인지 계림동본당을 떠나와서도 그들이 가장 마음에 남고 눈에 밟혀, 특히 성체조배 때 자비하신 하느님께 그들을 맡긴다.

소임지 이동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주간이 마침 봉성체를 하는 주간이었다. 환자들이 대부분 보라색 꽃을 좋아한다는 꽃집자매의 조언에 따라 엘리사벳에게 보라색 안개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복용하고 있는 약이 아직은 연구 단계라서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건강하게 잘 견딜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던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주님! 그녀를 부탁해요.” 하며 돌아왔다.

전신마비 장애를 지니고도 20년가량 본당 홈페이지를 관리해온 요세피나 자매가 마지막으로 차 한 잔이라도 나누자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계림본당의 보물인 우리 요세피나 자매님, 시간이 없어 이만 갑니다. 건강하세요. 나이 생각하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계림동성당 카페’를 지키세요. 제가 목동본당 소임을 할 때 전신마비인 형제가 20년 이상 본당 홈페이지를 관리했어요. 요세피나 자매님, 파이팅!“ 이란 메시지를 남겼다. 떠나던 날 아침, 휠체어를 타고 작별인사를 하러 온 안나 자매의 ”안녕히 가세요“ 인사도 이젠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안나, 잘 있어요‘“하며 안아주었다. 송별식사 때 한 형제는 “아니 되옵니다! 우리는 수녀님을 보낼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라고 쓴 편지를 주었다. 

그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신자들의 사랑과 기도 속에 기쁘고, 커다란 환희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화가 라파엘이 자신이 그린 ‘예수의 거룩한 변모’에 취하여 자주 그 그림 앞에 와서 머물렀듯이, 나 역시 성령께서 주신 영감에 따라 제대 꽃꽂이를 한 후에, 신자들이 꽃꽂이를 통해서 전례 안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에 감사 드리면서 제대 앞에 머물렀던 기억들, 신자들과 트롤 하모니란 연주 동우회를 만들어 성모의 밤과 성탄 행사를 준비하면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플롯을 연주할 때 가졌던 기쁨과 보람들.

수줍은 감꽃처럼 계림동본당에서 2년간 소임을 하면서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맺으려고 열심히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기쁘게 살았던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 하고, 이제는 지금 여기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며 "Let it be“를 노래한다. 특히 성모 마리아께서 내게 다가와 [다 맡겨 두어라]라는 지혜의 말씀을 되새기며…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오순희 베로니카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