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07 21:16
[해외선교] 내게 오실 부활의 주님! (제8편)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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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한 일이 있어 일기장에 기록해 놓았던 제 체험담을 나눕니다)

일년 중 미사가 없는 그 하루, 미사 없이 영성체 예식만 있는 성 금요일, 나는 마다가스카르의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십자가 경배’ 예절을 마친 후 묵상 중이었는데, 동네 청년이 다급히 내게 다가와 응급환자가 왔다고 했다. 동료인 발레리 수녀와 함께 급히 진료소에 와보니 보자기에 둘둘 감긴 환자가 차가운 땅 바닥에 뉘어있었다. 보자기를 들춰내고 들여다보니 알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가 도끼에 맞아 두 군데의 큰 상처에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떻게 하든 성체를 꼭 영하고 싶었기에 우리 둘의 손놀림이 평소보다 더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출혈이 워낙 심한데다 말라붙은 피를 씻기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다. 일행 중에도 도끼에 맞은 외상 환자가 또 있어서 서둘러 치료를 마친 후 아무래도 영성체를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뛰어서 성당에 도착했다. 신자들이 빼곡히 앉아 발 디딜 틈도 없는 성당 안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가자 신자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영성체 예절이 이미 끝났고, 신자들과 수도원 지원 형제가 흰 천을 제대 뒤 벽에 설치해 놓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영성체예식 후에 신자들에게 프로젝트로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면 신자들이 먼 길을 걸어서 귀가해야 하므로 최대한 준비를 서둘렀던 것이다. 오후 8시 30분에 영화 상영이 끝났다. 나는 수녀원으로 돌아와 개인으로 기도한 후 성체를 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나도 모르게 번쩍 눈을 떴는데, 누군가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그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켜보니, 어떤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커튼이 쳐져있었지만 달빛으로 방안에 있는 웬만한 물체는 다 보일 정도였다.

키 큰 남자가 등에 어린 아이를 업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서있었다. 간호사인 나는 이곳에서 늘 환자들을 치료해 왔기에 아픈 아이를 등에 업고 온 이곳 아빠들의 모습과 별반 다름 없어 보였다. 두려움 보다 왠지 마음 한 구석에 이상한 느낌이 자리했다. 너무나 안쓰러워 보여서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 어디가 아프냐? 고 소리 내어 물어보려 했다. 각 방이 얇은 합판 가리개 하나로 나눠져 있는 구조라서 옆방에서 곤히 잠자는 다른 수녀가 깰까봐 소리 내어 물어볼 수가 없어 그저 연민에 찬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고 있던 중 그 모습은 사라졌고, 나는 몸이 피곤한 탓이었는지 오랫동안 뒤척임 없이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 쪽으로 눈을 돌려 바라보니 그 자리엔 부활초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 공동체로 파견되어 오자마자 기도실을 담당해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부활대축일 준비로 사용했던 부활초를 미리 꺼내 숫자를 바꾸고 잘 다듬은 다음, 기도실에 옮기기 전에 내 방에다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희미한 달빛이 비춰준 서랍장 위에다 세워 놓은 부활초 대신에, 아픈 아이를 등에 업은 키 큰 아버지가 서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 나는 제대 옆에 꽂혀있는 부활초를 보며 부활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해마다 보던 부활초로 보이지 않고 아픈 아이를 등에 업고 먼 길을 달려 온 아버지의 애틋함이 담긴 그 모습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와 우리 모두와 함께 계심을 믿게 되었다. 분명 부활하신 주님은 올해도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 병들고 고통 받는 이들을 등에 업고 먼 길을 달려 이곳 진료소로 찾아오실 것이기에, 나는 주님과 함께 올 그들의 모습들이 그려지므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2013.3.31. 주님 부활 대축일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주금순 루피나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