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5-20 21:16
[알림] 5월 21일,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창립자 탄생일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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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5월 21일, 샤를르 드 샤뽀땡(프랑스) 소피 가르보뒤 호르(스페인)의 가정에 기쁨이 활짝 피어났다. 프랑스 낭트에서 이제 막 딸이 태어난 것이다. 엘렌 드 샤뽀탱이라 불리게 될 이 아기는 바로 다음 날 낭트의 생끌레멍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기의 요람 곁에는 네 명의 언니 오빠들과 여섯 명의 사촌들이 둘러 서 있었다. 이들은 주교좌 성당 가까운 꼴레쥬 거리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가족이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뒤 호르가'의 저택이었다. 깊은 형제애로 어우러진 이 한 지붕 두 가족의 삶은 엘렌의 어린 시절 전체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 열한 명의 아이들이 있었던 사랑스러운 호르의 옛 집은 지난 날 가장 정겨운 추억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누가 친형제 자매인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네 분의 부모님. 남자아이들 혹은 네 명의 큰 아이들, 네 명의 작은 아이들, 서로 이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우리가 내 아버지 내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대화 중에 늘 네 분의 부모님’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우리를 처음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에 놀라곤 했습니다.”

이 정겨운 가정에는 생기와 젊음이 넘쳐났다. 엘렌은 곧 이 무리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풍부한 재능에다 의지가 강하며 소란스럽고 리더십이 뛰어났던 이 어린아이는 '앙리 5세의 쟌다크'가 되기를 열렬히 원했다. 그의 격렬한 기질을 유연하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수완이 필요했다. 어느 날 작은 잘못에 대한 벌로 독서를 금지 당하자, 자기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어 글로 써 가지고는 이를 팔에다 끼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의기양양하게 외쳐대었다. “부모님은 책 읽는 것을 금지했지 책 쓰는 걸 금지하진 않았거든요. 내가 쓴 이야기는 아주 멋있어요.”

또 어느 날은 접시 한 무더기를 몽땅 깨뜨려 가지고 어머니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는데, 이에 마음이 상한 엘렌이 어머니가 물질에 너무 애착한다고 생각해 저금했던 돈을 꺼내서 “이건 접시 값입니다”라고 쓴 쪽지와 함께 몰래 놓아둔 적도 있었다. 엘렌의 대쪽같은 성격과 그 빛나는 재능이 염려가 된 어머니는 그래서 더욱 엘렌의 종교 교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엘렌은 1850년 5월 31일, 성모님의 달에 행복한 첫영영체를 했다. 그날 견진성사도 받았는데, 후에 엘렌은 이날을 가장 행복한 기념일이라고 불렀다. “첫영성체 후에 나는 완전히 하느님께 속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반느에 살던 때 매우 의미 깊은 두 분의 방문이 있었다. 어느 날 ‘가난한 이들의 작은자매회’의 창립자인 쟌 쥬강 수녀가 가엾은 노인들을 위한 기부금을 청하기 위하여 방문했다. 엘렌은 그 수녀님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저금통에서 아낌없이 돈을 꺼내 드렸고 언니들도 돈을 기부했다. 쟌 수녀는 세 딸 중에 누가 수녀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두 언니는 예의상 주님께서 성소를 주셨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지만, 엘렌은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머니를 꼭 붙잡으며 외쳤다. “나는 어머니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어요!” 그러자 쟌 수녀는 미소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성소를 받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항상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그 은총을 느꼈다는 말이지요.'’

또 한 분의 잊을 수 없는 손님은 아버지의 성 마리아대학 시절의 친구인 상스 주교였다. 그는 미국 미시시피주 나체즈에서 인디언들과 일하고 있었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이었다. 엘렌은 맨 앞 의자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주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엘렌이 열심히 듣고 있음을 본 주교는 엘렌에게 “인디언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단다. 얘야, 정말 슬픈 일이 아니냐?” 엘렌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후에 엘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희생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희생에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좋습니다. 주교님, 저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훗날 엘렌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의 창립자인 마리 드 라 빠시옹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