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0-22 00:41
[해외선교] 감히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제1편)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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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주일(10월 21일)을 맞이하여, 2012년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김실비아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의 해외 선교체험을 1편~6편에 걸쳐 나눕니다. 김수녀는 참된 진실과 진리를 찾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순간에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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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자매로 서로 사랑하며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하느님 안에서 참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는 신앙의 여정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을 통째로 신뢰하여 그분을‘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완전한 신뢰성으로 나아가는 회개의 여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각자가 고유하게 하느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성소에 따라 살아가는 이런 회개의 신앙여정을 여러 가지 언어로 달리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 삶의 모든 것이‘하느님의 선물’임을 느끼기에 그분으로부터 거저 받은 이 선물에 대하여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해외선교사로서의 체험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의 선물, 수도 성소의 선물
저는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김명숙 실비아 수녀입니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 안에 소재한 사평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어 가정을 이끌어 가셨던 부모님은 2남 4녀를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막내로 태어나 성실하고 바르게 사셨던 부모님 슬하에서 사랑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당시 저희 마을에서는 아무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한 번도 하느님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직 선교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그리스도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찾게 된 계기는 아주 뜻하지 않은 삶의 어려움, 그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내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체험을 하면서입니다. 참된 진실과 진리를 찾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정말 그 순간에 참된 희망을 주는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그 어둠과 절망 속에서 일어설 용기가 없어 나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느님을 불렀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하느님을 내 마음 안에서 찾았습니다. 이 고통을 통하여 육신과 심신이 갈라진 틈새로 하느님의 빛이 내 영혼에 비춰 들었을 때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고통은 세상 안에서 나를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한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성당에 첫발을 내 딛었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음을 느꼈고, 나 역시 오랫동안 그분을 목말라했던 것처럼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에 흠뻑 빨려 들어갔습니다. 1990년도에 세례를 받고 곧바로 ‘하늘의 문’이라는 청년부 레지오 단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세례 받은 지 몇 개월 후에 레지오 팀에서 만난 친구가 어떤 좋은 곳에 나를 데리고 간다기에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 체 따라 나섰습니다. 그곳은 바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성소자 모임이었습니다. 친구가 수녀원 성당에서 그 첫 모임의 내 느낌을 물었을 때 ,“내 방황의 닻을 내린 기분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곳은 영원히 나의 안식처, 여기가 좋으니 나 여기 살리라.”(시편132,14). 하느님 안에서 느꼈던 그 평화로운 안식과 행복감은 세상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내가 찾고 열망하는 바로 그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수도자가 되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정말 이 수도성소는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 중에 선물이었습니다. 아직 걸음마를 시작한 신앙생활이었기에 수도회에 입회하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매달 있었던 성소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상과 함께 1993년 2월 11일 루르드 성모님 축일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족 중에 아무도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에, 가족의 심한 반대와 부딪쳐야 했고 가족들 눈물의 홍해를 건너야 했지만, 신앙의 신비한 묘약은 이 하느님의 부르심에“예”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내 힘으로 건널 수 없는 홍해 바다였습니다.(계속)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김명숙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