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2-03 07:54
[알림]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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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팜플로나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cus Xaverius)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여,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에 있는 코모린 곶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와 인접한 몰루카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산첸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