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2-30 23:47
[알림] 천호동 화재 희생자(2018.12.22.)를 위한 추모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74  
   천호동 화재 미사편집4.psd (49.4M) [0] DATE : 2018-12-30 23:47:49

[슬픈기도] 
                              이해인 수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기쁘고 평화로워야 할 우리의 기도는
왜 이리 아프고 슬프고
어둡고 답답한가요, 주님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 날
느닷없이 뜨거운 불길 속에 희생당한
우리의 가엾은 자매들을
당신은 어찌하실건가요?

살아서도 외롭고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 없이
힘겹게 살아왔던 눈물 젖은 삶의 시간들
죽어서도 다시 한 번 죽어서 장례식조차 늦어진
슬픈 사람들을 슬프게 굽어보실 자비의 주님
이렇게 길 위에서 마지막 고별식을 치르는
우리의 가난한 기도에
길이신 당신께서 대답하여 주십시오

힘든 여정을 살아내느라
참 많이 수고했구나
나는 너희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당신의 넓은 품에 안아 주실거지요?
함께 울어 주실거지요?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진정한 벗이나 가족이 되질 못하고
사랑으로 돌보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과
오만한 편견과 독선의 잘못을 꾸짖어 주십시오

참으로 죄송합니다, 주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해 상처 주고
돌팔매질을 하던 우리의 죄는
어떻게 보속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선한 이웃이 되지 못해
용서를 빌 자격 조차 없는
오늘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창문이 있어도 창밖으로 나올 수 없던 이들에게
우리는 창문이 되지 못했습니다

떠난 이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이 시간
우리의 언어는 힘이 없고
위로의 말도 빛을 잃어 슬픈 오늘
그래도 다시 기도해야겠지요
당신께서 우리의 집이 되시니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야겠지요
당신께서 우리의 희망이시니
떠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언가 다시 선한 일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진정 당신이 계시기에 안심하고
우리는 고인들을 떠나 보내겠습니다
먼 길 가는데 외롭지 않게 함께 하여주소서
미움도 학대도 구속도 차별도 없는
당신의 그 나라에서는 저들이
부디 행복해 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이제는 자유롭게 날아오르게 하소서
날마다 간절히 꿈 꾸고 애타게 그리던
자유의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 좋겠습니다
살아서 못 입은 가장 고운
행복의 비단옷을 차려입고
천상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으로
지상의 우리들을 향해
환히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오, 생명과 치유의 주님
한 번도 만난 일 없지만
기도 안에 가까운 가족이 된
이 땅의 천호동 희생자들이
모든 괴롬과 시름을 떨쳐버리고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게 하소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소서. 아-멘

2018.12.30 .고별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