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1-07 08:30
[알림] 교황님의 [2019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훈화 L'angelus]
 글쓴이 : Admin
조회 : 647  
   https://www.facebook.com/seulki.jin.7/videos/1954983084569906/ [218]
로마에서 수학 중인 진슬기 신부님이 교황님의 [2019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훈화 L'angelus]에 한글 자막을 입혀 게시한 동영상을 고마운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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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길로’ 돌아갔다 - [2019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훈화 L'angelus]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맞이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빛으로 상징되시는 예수님의 (공적인) 드러나심을 기리는 축제입니다.  (한데) 이 빛은 예언서에 예언되었습니다.
네, 약속된 빛이었죠.
실상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이렇게 외쳤으니까요.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사야 60,1]

(허나) 빛이 왔으니 일어나라고 하는 예언자의 초대는 생뚱맞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왜냐하면 이 초대는 고난의 유배 이후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억압을 체험한 직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데) 이러한 초대는 예수 성탄을 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네, 이 초대는 여전히) 우리가 베들레헴의 빛으로 다가가기 위해 우리를 채근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죠.
아울러 우리는 (이 여정에서) 외적인 징후들 때문에 멈추지 말라고, 오히려 바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한 사람과 신앙인으로서 우리 인생 여정의 새로움을 살아가라고 초대받았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그 빛은 (분명) 복음에서 드러나고 맞닥뜨려 지니까요.
(그럼요) 다윗의 고장 베들레헴에서 나신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전해주시고자 오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사가 마태오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방법과 그분 현존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를 수 있음을 전해줍니다.
예를 들어,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은 이 아기의 출현을 거부하고 고집을 부리는 완고한 마음을 가졌죠.
(네, 우리에게는) 빛에 대해 문을 닫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이에) 그들은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오심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대표하는 셈입니다.
(네, 그들은 오늘날)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에게 문을 닫아거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헤로데는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민중들의 참된 선익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네, 그는 참으로 제 개인의 이익만을 걱정했죠.
(아울러 당시)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고정관념을 넘어 바라보는 법을 몰라 두려워했습니다. 하여 그렇게 자신 안에 갇혀 예수님 안의 새로움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의 경우는 매우 달랐죠.
동방에서 온 그들은 히브리 신앙 전통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민족들을 대표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별을 따라 나섰고, 길고도 위험스러운 여정을 (기꺼이) 마주했죠.
목적지에 도착해 메시아의 진리를 알기 위해 말입니다.
네, 동방박사들은 '새로움'에 대하여 열려 있었습니다.
하여 그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새로움이 알려졌죠.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 말입니다.
(이에) 동방박사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상징적인 선물을 그분께 드립니다.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이죠.
왜냐하면 주님을 찾는다고 함은 단순히 여정 중의 항구함만이 아니라 마음의 관대함도 함께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자기 고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복음은 그들이 '다른 길로' 돌아갔다고 전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만날 때마다 길은 바뀝니다.
삶으로 돌아가는 방식은 달라지고 말죠.
네, 우리는 쇄신되고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여) 그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이 겸손하고 가난한 임금의 신비를 품고 제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각자가 체험한 것들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죠.
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구원은 (이렇게) 가깝거나 멀거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럼요) 이 아기를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분은 모든 이를 위한 선물이신 걸요.
하여 우리도 잠시 침묵 중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비추어주시도록 합시다.
네, 우리의 근심들이 우리 마음을 문을 닫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부드럽고 적절한 이 빛에 우리를 열어젖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지도록 합시다.
그러면 동방박사들과 같이 우리가 결코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더 없는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동방박사와 당신께 다가가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을 보게 해주시는 어머니이자, 예수님께 우리를 이끄는 별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러한 여정 가운데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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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모범생으로 별 문제 없이 잘 살아온 이들이 가끔 의외로 고집불통일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되는 경우입니다.
이에 이런 이들은 새로운 반응에 대해 ‘지금껏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이는 없다’하며 문을 더욱 굳게 닫곤 합니다.
물론, 그 모범적으로 살아온 이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별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기존의 선례라는 이유로 ‘문을 닫아거는 것’ 자체는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는 늘 의외의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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