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06 17:21
[알림] 2017년 초기양성자 모임 후기
 글쓴이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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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양성자들이 모여 5월 4일-6일(2박3일)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하느님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솔뫼에서 해미까지 한국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도보순례를 했다. 사도직실습 중인 두 수련자매를 제외한 17명의 초기양성자들과 동반자인 황베로니카 수녀님, 박로사리아 수녀님, 이리디아 수녀님, 박요안나 수녀님(운전봉사) 그리고 민변소속 변호사 이루도비꼬 형제님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이 길동무였다.

여정의 시작은 당진 솔뫼성지였다. 그곳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의 도자기공방에서 하느님을 떠올리면서 각자 상징물을 빚어보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흙을 여러 번 세차게 책상 위에 내던져서 풀어주는 것이었다. 기초 작업이 잘 되어야 무엇이든 만들 수가 있다기에, 온힘을 다해 냅다 던지길 거듭하면서, 마치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하느님 사람으로 다듬어져가는 수도생활 과정처럼 여겨졌다. 각자 정성을 다해 빚은 작품들은 하나하나 소중하고 고유했다. 문득 애틋한 마음이 들면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 마음이 이렇겠지 싶었다.

작업실을 나와 솔뫼성지 잔디밭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시작전례와 저녁기도에 이어 청원소 수련원 식구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를 마친 후 루도비코 변호사의 나눔을 들었다. 4대강사업, 백남기 농민사건 등의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는 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에서 함께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우리 여정에 동반하게 되었단다. 30분가량 현장의 경험담을 들었다. 여러 곳에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진실되고 구체적인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새기는 시간이었다.

이틀째 아침. 솔뫼성지에서 미사를 드린 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걷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다. 출발 직전에 성경구절을 뽑아들고 합덕성지로 향했다. 명동성당을 닮은 귀여운 성당이 있는 합덕성지엔 성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들의 스승인 이 매스트로 신부님의 묘소가 있다. 순교의 장소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잠시 머문 후 신리공소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논길을 지나 중간에 들른 곳은 무명순교자 줄무덤. 성 손자선 토마스의 선산이기도 한 이곳에서 연고자가 없는 총 46기의 목 없는 시신과 묵주가 발굴되었다. 묘비 없이 그저 십자가가 빼곡하게 선 줄무덤에서 연도를 바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지고 선두그룹과 뒤에 따라오는 그룹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도 했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모던한 분위기의 신리성지에 이르렀다.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이요 조선 교구청이 있던 곳이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이곳에서 점심식사와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예산 여사울성지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여사울성지에 도착하니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보기에 좋으셨던지 성지담당 신부님이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며 성지소개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한국천주교회의 못자리이며, 내포 지역의 사도인 이존창 (루도비코)의 생가터가 있는 이 성지를 좀더 찬찬히 살펴보았으련만 하늘이 노랗게 물들며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이라 서둘러 차에 몸을 싣고 서산 해미성지로 떠났다.

3일째 아침. 해미성지 안에 있는 숙소에서 시작한 아침은 고요했다. 그룹별로 해미읍성에서 아침기도를 바친 후, 해미성지까지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도시 전체가 순교지이며, 해미성지 기념관에는 순교 기록화와 함께 성지에서 발굴된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다. 해미읍성에 있는 동헌에서 재판을 받아 옥에 갇혔던 순교자들은 지금도 우뚝 서 있는 호야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고 피를 흘리며 순교했다. 그들의 시신이 버려지고, 온갖 방법으로 처형되었던 서문 밖. 그 생생한 터에 십자가의 길 각 처가 세워져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순교의 흔적들. 신앙의 선조들의 얼이 숨 쉬는 이번 도보순례에서 만난 순교자들은 대부분 무명의 가난한 신자들이었다. 생매장을 당하고 돌 위에 내던져지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그분들의 열렬한 믿음이 이제 막 수도자의 길을 나선 우리들에게 깊이깊이 심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일상에서 벗어나, 같은 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향하여 걸어가는 우리가 함께 걸은 이 시간.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연 속에서 웃고, 바라보고 함께 한 시간들이 쌓여 우리는 자매가 되어가나 보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정미영 세실리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