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30 21:08
NS 151 사랑이신 주님께서 당신 사랑의 요구를 만족시켜드리기를 내게 원하십니다.
 글쓴이 : 홍현정 (61.♡.21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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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51
구유에서, 최후의 만찬에서, 갈바리아의 최후의 고통 속에서, 감실에서, 어디서든지 사랑이신 주님께서 내게 많은 요구를 하고 계심을 관상하였습니다. 그 신성은 내가 당신 사랑의 요구를 만족시켜드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바람이 있으실까요? 나는 사랑께 그분을 온전하고도 충만하게 만족시켜드리고픈 나의 갈망을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내 사랑과 희생이 거기까지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봉헌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큰 속죄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심을 -물론 그분은 속죄물이 되셨지만- 그보다는 당신 아버지께 대한 봉헌과 의탁으로써 당신 스스로 희생 제물의 주체가 되심을 보고 너무나 경탄하였습니다. 그분은 당신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을 바치고, 자신을 내어주셨으며 사랑은 그분을 당신 전능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길이라 믿습니다. 이 길로 그분을 따르는 것, 이것이 내 결심입니다. (1884년 4월 11일)

- 사랑이신 주님께서 내게 요구를 하신다면, 그것은 내가 주님의 사랑을 알아듣고, 그에 합당한 응답을 하기를 요구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구유에서, 최후의 만찬에서, 갈바리아의 최후의 고통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읽어내었고, 그에 대한 사랑의 응답을 드리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갈망 또한 느꼈다. 왜냐하면 “만족시키다(satisfaire)”라는 단어에서 고행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사실 고행, 절제는 사랑의 요구에 대해 온전히 만족시키고픈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받고싶은 갈망은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온전하고도 충만하게 만족시켜”드리고자 하는, 다시 말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응답된다. 그러나 당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건강 때문에 당시 수도생활에서 요구하는 고행을 하지 말라고 라파엘 신부로부터 명령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사랑의 표현으로서 고행과 희생을 하고자 하는 갈망과 자신의 육신적 한계 가운데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긴장에 빠지지 않고,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시선은 늘 그렇듯 예수님께로 향한다.  히브 10, 5-10에서 나오는 예수님은 속죄와 봉헌물을 바치기 보다는, 오히려 봉헌과 의탁의 자세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봉헌하시는데, 그 예수님을 보고서 감탄하는 것이다. 이서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 바치고, 내어주셨으며(사랑에 찬 아버지의 계획에 엑체 피앗하셨으며), 아버지께서는 이 아드님의 희생을 받아들이셨다.(아들의 예에 대한 아버지의 예)
  - 이렇게 예수님과 아버지의, “예”를 통한 상호 내어줌을 보고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애초에 빠져있던 갈등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대한 봉헌의 새로운 차원, 즉 존재적 봉헌의 차원을 이해하고 이것이 자신의 길이라 확신한다. 즉 우리의 카리스마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한 아버지의 계획에 엑체 피앗(예)하신 성자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 이 날짜를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중요한 단계를 뛰어넘은 날로 기억한다. 얀세니즘의 영향아래 고행과 외적 희생의 행위에 매여있던 창립자가 자신의 어떤 행위나 희생 보다 의탁의 자세로 자신의 존재를 아버지께 내어드리는 것이 핵심임을 깨닫고, 그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한 영혼을 자유롭게 해가시는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