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04 23:01
NS 159 내 영혼은 감실 가까이에서 자신 안에 사랑이 행하신 일을 느낍니다.
 글쓴이 : 홍현정 (218.♡.6.116)
조회 : 2,269  
NS 159
내 하느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 7).”
그리고 내 눈길은 사랑의 인도를 받아 십자가를 향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내 아름다우신 삼위일체의 마음 흐뭇한 사랑이 머무르셨습니다. 나는 사랑을 위해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어린양의 사랑과 희생을 응시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비우느라 피로해진 내 영혼 역시 감실 가까이에서 자신 안에서 사랑이 행하신 일을 느낍니다. 즉 더 이상 내 영혼 안에는 하느님의 뜻 외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나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 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행하신 것입니다. (1884년 5월 15일)

-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이 말을 안셀름 그륀은 “예수, 하느님의 이미지”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Eudokia(마음에 듦)라는 말은 하느님의 마음에 듦,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애정 깊은 움직임을 말한다. 하느님의 인정을 받아서 마음에 들었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좋은 의지. 이 말은 매우 애정 깊은 모습으로 각인된 루가의 하느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인간에게서 사랑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시기 위하여 예수 탄생에서 인간에게 당신 사랑을 보여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인간과 관계를 맺고 계셨고, 당신 아들의 탄생을 통하여 이 관계를 심화하고 싶다는 것을 이 단어는 표현한다.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기쁨을 두는 사랑(Se complaisance en trouver son bonheur en, etre combler de...) 즉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그것으로 충만한, 의 뜻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첫 회개라고 그 자신이 불렀던 체험에서 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랑”을 체험하였다. :

  “이렇게 기쁨을 주는 사랑이 내 안에 생겨났습니다. 내가 너무나 죽은 이처럼 창백해졌으므로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은 내가 병이 났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무엇을 들은 것도 아니고, 단지 스쳐가는 한 순간의 생각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나를 완전히 다른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제가 깨닫지도 못했으면서도 하느님을 늘 사랑해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늘 아름다움에 이끌렸으니까요. 이 첫 번째 회심의 기억이 어떤 식으로 떠올랐는지 어떻게 설명할까요!  신부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기억에 대해 쓰는 이 순간에도 내 손이 떨릴 정도입니다. 저는 늘, 심지어 어려운 시간에도 하느님께 외에는 기쁨을 두지 않았으며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닫아걸었습니다.”(1882년 7월 21일)

-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세례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세례 때 하신 말씀을 자신을 향해 하신 말씀으로 돌려서 묵상 주제로 삼는다. 이는 1856년 4월 3일 혹은 4일, 마리아의 자녀회에서의 피정 중에 했던 체험을 떠올리게 해준다. 아무튼 같은 체험을 가지고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의 눈길은 십자가를 향한다. 십자가에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예수님의 고통이나 죽음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의 움직임을 읽어낸다. 즉 사랑을 위해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예수님의 사랑와 희생을, 그를 통해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상호 사랑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것이다.

- 이러한 관상의 시선으로 자신의 최근 체험과 현재 상태를 바라본다. 현재 마리 드 라 빠시옹은 모든 사적 욕구에서 정화되고 해방되어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고 원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는 최근 그가 겪었던 십자가를 통한 정화의 결과이며, 이 정화야말로 그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서 이루신 일이다. 자신 안에 하느님이 이루신 큰 일을 명확히 인식하며 감사에 찬 마리 드 라 빠시옹을 느낄 수 있다.

- 기도란 의지적이고, 따라서 피곤해지는 인간적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이 내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하시도록 해드리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분의 뜻에 내 뜻을 내맡기는 것 뿐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있어 이 시기는 능동적 기도에서 수동적 기도에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께 협력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