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8-03 13:48
NS 269 이십칠 년 전 오늘 하늘에서 내 이름이 떨어졌습니다.
 글쓴이 : 홍현정 (218.♡.1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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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269
이십칠 년 전 오늘 “예수의,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제물인 마리아”라는 이름이 내게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오늘, 순명께서 나에게 성체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당신의 성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눈길 아래 마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 홀연히 이 “자기 비움”의 신비가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제병을 삼키는 사랑, 그리고 사랑이 자신이 되고, 사랑과 한 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사랑에 자신을 바치는 제병입니다. 나는 나의 하느님께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린애와 같이 작고 순수하게 나를 봉헌한 듯싶습니다. (1888년 1월 23일)


- 1888년 1월 피정의 시작이다. 이 피정의 주제는 성체이다.
이즈음 창립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두 구절이 “아름다운 추억”에 보인다.
1) “총장신부님께서 다음과 같은 짧은 편지를 보내셨다. ‘수녀님, 무엇 때문에 까닭 없이 걱정하십니까? 확신하십시오. 저와 저의 수도회는 수녀님과 수녀님의 수도회에 항상 헌신할 것입니다.’ 1887년 5월 4일.” - 222쪽.
2) “총장 신부님께서는… ‘수녀님은 충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수녀님께 그토록 선하심을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아요. 무릎을 꿇고 순종하십시오.’ 이 말씀에 나는 무릎을 꿇었고 그분은 일어서셨다. ‘자 나의 딸이여, 단번에 끝내십시오. 수녀님의 영혼,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영원을 맡기는 영원한 봉헌을 하십시오.’ ” 1887년 8월 - 258쪽
즉 이즈음 창립자는 자기 구원에 대한 의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구체적으로는 프란치스코회의 사랑과 호의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 했던 것 같다.

- 근본 체험
1) 마리 드 라 빠시옹은 1월 23일이라는 날짜 때문에, 그리고 제시된 묵상 주제인 성체이신 예수님에 대한 생각 때문에 27년전 글라라회에서의 체험을 상기하고 있다.
2) 심연으로 떨어지듯, 성체의 예수님 안에서 자기 비움의 신비가 이해되어졌다.- 사랑으로 일치하기를 바라는, 사랑의 신비가 그것이다.
3) 이해하고 나니 자신을 작고 순수하게, 어린아이와 같이 봉헌한다. 하느님께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 성체의 예수님의 신비는 자기 비움의 신비라 요약된다. 이 신비는...
사랑은 제병을 삼키고 제병은 자신을 사랑에 바친다.
이는 사랑이 자신이 되고, 한 몸이 되기 위해서이다.
즉 자기 비움은 사랑으로 인하여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갈망의 결과이다.
(이 때 제병을 삼키는 사랑이 누구이고, 자신을 사랑에 바치는 제병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삼위일체의 사랑 같기도 하고, 성체 안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봉헌하는 나의 사랑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사랑은 상대방과 일치하기 위하여 자신을 떠나게 만드는 역동이라는 것이다.)

- 성체 안에서 드러나는 이 사랑의 역동성에 대해 묵상하고 나니, 그것이 나를 더욱 더 순수하고 작게 봉헌하도록 이끈다.

- 관련 성서 구절 : 갈라 2, 19
이제는 내가 사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TOB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일치의 목적은 그분 부활에의 참여이다. 이 친교, 일치의 덕분으로 바울로는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에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었다. 이 구절은 하느님의 아들과 이루는 일치, 친교라는 그리스도인 존재의 정의를 내려준다. 나의 육신적 삶은 여전히 죄인인 인간의 죽을 운명이라는 조건에 매여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이 생에서 벌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이 거저 주시고, 또 구원하시는 사랑에로 열어준다.

자기를 향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그 표현으로서의 프란치스코회의 지지를 확신하지 못했던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이 피정은 다시 그를 하느님의 거저주시는, 구원하시는 사랑에로 돌려보내는 것 같다. 우선 날짜로 인해 27년전 글라라회에서의 체험을 상기하면서 그는 다시 성체의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상대에로 향하는 하느님의 거저주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을 확신하면서 자기 역시 자신을 비우고 그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열려있고자 자신을 봉헌하려는 갈망을 새롭게 한다.